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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건 대통령 구하기

조셉의원 2008. 5. 28. 23:10

   

레이건 대통령 구하기

 

 

1. 역사의 현장

 

<2시 30분>

1981년 3월 30일 오후

Washington DC, 조지 워싱턴 대학병원 응급센터.

안내 데스크에 놓인 흰색 전화기의 벨이 울린다.

평소에는 그 존재가 잊혀져 있던 이 전화기는

백악관으로 연결된 직통전화였다.

전화는 레이건 대통령의 자동차가

곧 응급실에 도착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렸다.

연락을 받은 의료진은

당시 외상치료실에서 치료 받고있던 환자를 다른곳으로 옮기고

대통령을 맞을 준비를 하게 된다.

 

<2시 31분>

대통령의 리무진이 병원 현관에 도착.

레이건 대통령이 차에서 내린다.

당시 여분의 휠체어가 없자

그는 걸어서 병원 현관을 들어선다.

마중나간 간호사가 그를 부축하며

‘무슨 일입니까, 어떻게 할까요?’라고 묻자

대통령은 ‘가슴이 아프고 숨을 쉴수가 없다’고 대답한다.

현관에 들어서면서 그는 곧 쓰러지고 만다.

의료진과 사람들이 달려들어 그를 안고

급히 외상치료실로 옮긴다.

 

 <2시 34분>

치료실로 옮겨진 레이건에게서

외상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으며,

호흡은 거칠어져 갔다.

얼굴은 창백했고 의식은 있었으나

통증 때문에 말은 하기 힘든 상태였다.

치료는 최정예 외상팀에 맏겨진다.

그의 옷은 가위로 잘려 벗겨지고

혈압과 맥박 측정을 위한 모니터가 연결되고

수액의 공급을 위한 정맥주사가 달려지고

코에는 산소마스크가 대어진다.

 

<2시 35분>

병원에는 뒤죽박죽이 된 전갈들이 연달아 들어온다.

총격사건이 발생했다는 것도 있었고

레이건이 총에 맞았다는 설도 있었다.

그러나 정작 레이건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고

온갖 추측이 난무하였다.

의료진은 대통령이 총에 맞은 것이 아닌가 의심하였으나

아직 정확한 진단을 할 수가 없었다.

현장에 있었던 경호원들은 그들이 대통령을

총격현장에서 무사히 빼내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응급실에 와 있던 대통령주치의 루그박사는

총에 맞지는 않았으니 가벼운 심장발작 같다고 하였다

 

외상치료실에 처음으로 나타난 의사는

웨슬리 프라이스였다.

그는 외상팀은 아니었으나 대통령의 차를 보고

병리학교실에서 달려온 것이었다.

레이건은 기침과 함께 피를 �어내고 있었고

혈압은 50~60정도로 매우 낮아

쇼크에 빠지기 직전이었다.

프라이스는 레이건의 가슴을 청진하면서

좌측폐의 호흡음이 감소되어있는 것을 발견한다.

옆에 있던 경호원에게 당시 상황을 물으니

‘총격을 피해 대통령을 차에 급히 밀어넣는 와중에

갈비뼈가 부러진 것 같다‘고 말한다.

닥터 프라이스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부러진 늑골편이 폐를 찔러 내출혈이 되었다고.

이 오도된 생각 때문에 의료진은

벗겨낸 양복을 면밀히 살피는 일을 간과한다.

서두르는 통에 왼쪽 소매밑의 작은 구멍을

발견하지 못한다.

 

<2시 41분>

레이건이 응급실에 도착한지 10분이 지났으나

그가 총에 맞았다는 사실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었다.

수액의 투여로 혈압은 조금 씩 상승하였고

의료진은 내출혈을 의심하였으나

확신할 수 없었다.

현장에 있던 경호원들은

대통령이 총에 맞지 않았다고 말했다.

닥터 프라이스는 늑골이 부러진게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자세한 청진을 위해 그를 돌려눕히던 중

레이건의 좌측 옆구리에 난 작은 상처를 발견하게 된다.

프라이스는 경호원에게 상처를 가리키며

‘대통령이 총에 맞은 것 아니냐? 총알은 찾았냐?‘고 묻자

피격사실을 몰랐던 경호원은 당황할 뿐이었다.

 

<2시 47분>

관통상은 발견되지 않았고 외부 출혈흔적도 없었다.

흉부외과 치프 레지던트 데이빗 겐즈가 응급실에 도착하여

닥터 프라이스로부터 상황을 인계받는다.

레이건은 좌측 옆구리에 총상을 입었으며,

호흡곤란을 호소하고 좌측 폐의 호흡음이 들리지 않으며,

수축기 혈압은 80이었다.

흉곽내부의 손상에 의해

흉강내에 다량의 혈액과 공기가 들어차게 되면

폐가 압박되고 수축되어 숨을 쉬기 어렵게 되며

환측 폐야의 호흡음이 사라지게 된다.

이런 때에는 흉강내에 관을 삽입하여

고인 혈액과 공기를 빼내 줌으로써 폐가 확장되게끔 유도하는

응급시술이 필요하게 된다.

닥터 겐즈는 즉시 흉강삽관술을 준비한다.

곧 이어 외상팀의 조셉 지오다노 과장이 나타나

지체없이 흉강삽관술을 시행한다.

흉부 총상 환자들의 80~85%는

조기에 흉강삽관술을 시술받게 되며,

흉강내의 피와 공기를 빼내어 폐가 확장되고 나면

출혈이 자연적으로 멈추기도 한다.

흉관의 삽입과 동시에 피가 울컥 솟아나오고는

곧 출혈이 멈춰야 하나 레이건의 경우는 그렇지 못했다.

관을 통해 피가 계속 흘러나왔고

좌측폐의 호흡음은 살아나지 않았다.

이는 출혈이 지속되어 폐가 확장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레이건은 대량출혈로 인해

사망할 위험에 처해 있었던 것이다.

 

치명적인 양의 출혈이 지속되었다.

소실된 피는 다량의 수혈을 통해 보충하고 있었고,

흉강삽관술만으로는 폐가 확장되지 않아

응급 개흉술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어 흉부외과 과장인 벤 아론이 응급실에 도착한다.

레이건은 이미 그가 가진 혈액의 1/3을 잃고 있었다.

흉관을 통해 계속 흘러나오는 피를 바라보는 아론에게는

혈액의 검은 색깔이 마음에 걸렸다.

어두운 색의 피가 나온다는 것은 폐동맥의 손상 가능성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폐조직에서 유래하는 출혈은

대개 절로 멎기 때문에 별 문제가 안되나

폐동맥에서 유래하는 것은

출혈량도 많지만 절로 멎지 않기 때문에

수술적 치료를 요하게 된다.

일상적인 개흉술이 될 것이고 상황은 명확했으나

잠재적인 위험요소들이 있었다.

레이건이 노령(70세)인데다, 이미 혈액의 반을 잃은 상태이며,

소소한 건강상의 문제들이 있었다.

이들은 평소에는 잠재해 있다가 수술과 같은 큰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비로소 불거져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닥터 아론은 수술 여부를 놓고 고민하다

즉시 수술하는 것이 대통령을 위해 더 안전할 것이란 판단하에

수술을 하기로 결정하게 된다.

그리고 이 결정의 배경에는

혹시라도 폐에 박힌 총알이 혈관을 타고 심장으로 이동하고

이것이 심장혈관을 막아 심정지가 발생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었다.

 

<3시 24분>

총알의 갯수와 위치를 확인하기 위한 흉부 X-선 촬영이 시행되고

레이건은 수술실로 옮겨진다.

수술이 준비되고 마취과에서 마취를 하려는 순간

레이건은 손을 들어 마스크를 벗고는

“여러분 모두가 공화당원이었으면 하오”라고 말한다.

이에 열성 민주당원이었던 닥터 지오다노가

“각하, 오늘은 우리 모두가 공화당원입니다”라고 응답한다.

 

마취가 시작되고

닥터 아론은 수술부위를 확인한다.

흉부 X선 필름상 작은 탄환이 1개 보인다.

복부에 또 다른 탄환이 존재하는 것을 배제하기 위해

복강내 천자를 통해 체액검사를 한다.

여기서도 피가 나오면 가슴뿐 아니라 배까지 열어야 한다.

그러나 다행히 복강내에서는 피가 검출되지 않았다.

 

대통령이 옆으로 뉘어지고

좌측 7, 8번째 늑골 사이에 15cm의 긴 절개가 가해진다.

가슴을 열자 총알이 폐를 뚫고 들어간 구멍이 나타난다.

이상하게도 흉곽에 난 상처는 작은데 폐에 난 상처는 상당히 컸다.

닥터 아론은 탄환이 7번째 늑골에 부딪힌 후

회전하며 들어와 폐를 크게 찢어놓았고 이로인해

대량출혈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한다

폐손상이 큰 것으로 미루어 인접한 큰 혈관이나 심장에

치명적인 손상이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수술팀은 폐를 수축시킨 후 인접장기를 하나하나 점검해 나간다.

흉강에는 계속되는 흡인에도 불구하고 순식간에 피가 들어차

마치 ‘잉크병속에 든 시계를 고치는 일’ 같았다.

출혈을 막으려면 탄환을 찾아야 한다.

다른 장기에는 손상이 없는 것이 확인되어

탄환은 폐 안에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마취시간이 길어지는데도 총알을 찾지 못하자

수술실에는 다른 선택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분위기가

생겨났다.

 

총알을 찾지 못하여 수술시간이 길어지자

수술실에는 초조한 긴장감이 흐르기 시작했다.

수술을 계속할 것인가, 중단할 것인가?

집도의인 닥터 아론은 딜레마에 빠진다.

이제는 ‘레이건의 가슴속에서 총알을 제거하는 것이 필요한가’하는

원초적인 질문으로 되돌아가는 상황이 되었다.

일반적인 경우 환자의 상태가 안정되면 수술을 끝내는 것이 보통이고

감염의 위험이 없는 한 금속쪼가리가 몸 속에 남아 있어도 괜찮다.

그렇다고 감염의 위험이 없지는 않았는데,

총알이 대통령의 옷을 뚫으면서 작은 천조각이

몸속에 유입되었을 가능성이 있었다.

또 다른 문제는 대통령의 몸 안에 총알을 남겨놓았다는

기사가 나는 것은 집도의에게 부담스런 것이었다.

아론은 폐의 이곳저곳을 눌러가며 딱딱한 물체를 찾고 또 찾았으나

총알은 발견할 수 없었다.

 

<4시 25분>

레이건이 수술대에 오른지 1시간이 지났다.

그의 상태는 안정적이었으나 중요한 진전이 없었다.

마취시간이 길어질수록 술후 합병증은 비례하여 증가하는 것이고

그가 노령이라는 사실을 놓고 볼 때

한가로이 수술을 계속할 수 있는 상황이 못되었지만

아론은 곧 총알을 찾을것만 같은 기대감에

손을 놓지 못하고 수술을 계속 진행한다.

 

그러나 10분이 더 흘러도 총알을 발견하지 못하자

그에게 또 다른 불길한 생각이 떠오른다.

그는 레이건의 폐를 샅샅이 모두 조사했다고 확신했다.

그런데 총알이 없다면? 그 이유는?

이번엔 총알이 폐안에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폐정맥은 크고 흐름이 빨라 총알까지도 휩쓸어 갈 수 있다.

총알을 찾느라고 헤집은 탓에 폐 가운에 있던 총알이

폐정맥으로 들어가 심장으로 이동하고,

심장에서 혈관을 타고 신체 다른 장기로

사라져버렸을 가능성이 있었다.

 

<4시 55분>

수술시간 1시간 반이 경과하고 있었고

레이건의 출혈은 계속되고 있었다.

닥터 아론은 총알이 폐안에 남아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두 번째 흉부 X-선 사진을 촬영토록 지시한다.

이 때문에 10분이 더 지연되고

긴장감속에 두 번째 X-선 사진을 볼 때 까지는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두 번째 필름은 총알이 아직 폐안에 있음을 보여주었고

아론은 안도의 숨을 내쉰다.

 

아론에게 총알을 찾기 위한 새 아이디어가 떠올랐는데

그것은 총알이 통과한 경로를 따라간다는 것이었다.

폐 표면에 난 총알의 자입구을 따라 도관을 삽입하면

아마도 도관이 닿는 끝부분에 총알이 있을 것이었다.

도관은 좌측 폐 가장자리에서 멈추었다.

아론은 폐 표면에 작은 절개를 가하고 총알을 발견해낸 다음

밀려들어가지 않게 조심하며 힝클리가 쏜 5번째 탄환을

제거해 낸다.

 

거의 3시간에 걸친 대수술 끝에 레이건은 목숨을 건지게 되고

암살자의 총에 맞고 살아난 최초의 미국 대통령이 된다.

 

(이상은 Discovery channel에서 방영한 다큐멘터리 ‘Saving Ronald Reagan’중

병원에서 있었던 일만 요약, 발췌한 것입니다.)

 

 

 

2. 감상과 비평

 

이 다큐를 보고 먼저 느껴지는 것은

미국사람들 참 다큐 잘 찍는다는 것이다.

극적인 흥미를 잃지 않으면서도

그 내용은 철저히 사실적이며, 교육적 가치가 있었다.

철저한 고증과 감수가 있었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사후에 영웅대접을 받을 정도로 추켜세워진 의료진이었지만

다큐에서는 그들이 실수했던 부분까지 여과없이 드러내는

균형잡힌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 TV에서 난무하는 고발성 프로그램들...

의료계의 치부를 건드리고 파헤쳐 이익을 보는 사람은

누구일까 생각하게 된다.

너도나도 국민을 위한다고 하지만

진정 국민을 위한다면

의사와 병원에 대한 의혹과 불신을 쌓는 것 보다는

의료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고

신뢰를 쌓게끔 돕는 일일 것이다.

 

의료행위란 지식과 경험의 토대 위에서

상상과 추론, 아이디어와 정확한 판단등을 요구하는 것이며,

그 과정에서 의사는 때로 딜레마에 빠지거나

두려움, 혹은 좌절을 맛보기도 하고

때로는 기쁨과 환희를 느끼기도 하는 것이다.

 

 

 

20080528 조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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